잊고 있던 기억이 부쩍 부쩍 많이 생각 나는 요즘이다..
왜 이렇게 옛날 생각이 나는지..
눈이 온 풍경은 묘하게 옛날 생각을 자극해서.
샛노랗고 푸릇푸릇한 초록빛깔 아가씨를 증오했다.
나로서는 가질 수 없던 것들만 잔뜩 가지고 있어서.
하지만 그런 아가씨들이 비틀려가는 걸 보는 것도
별로 취향은 아니다..
흰색이 다른 빛으로 물들어가는 건 그 나름의 쾌락이 있지만.
그런 초록빛아가씨는 시들어갈 수 밖에 없으니까.
시든다는 건 어떻게 봐도 미학적으로 아름다울 수는 없다고 생각해.
이제 와서 다시 작업하면 다시 이런 사진을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이 작업본들 필름은 가지고 있던가..
내 낡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그 산을 오르내렸던 것을 기억한다.
기억은 미화된다고 예쁜 추억만 남아있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조각조각난 인간이었을 뿐.
생각해보면 끝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니고
그 글을 완상해서 공모전에 냈던 것. 그것이 끝이었던 거 같다.
아니 적어도 끝의 시작이라고 해야할까..
그걸로 나름 나로서도 받아들일 수 있게 무언가가 내 안에서 정리되고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해.
그 글. 그냥 그대로 버려지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그 시절 나의 모든 것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공개해도 좋을건 또 아니라서..
픽션은 픽션이라고 해도 아는 사람은 보면 알 것도 같고..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뿌듯할 수 있다는 경험.
그래, 거기 너 말야. 너.
그래 시간이 지나니까 이제 말할 수 있어.
빌어먹을 네가 그래, 나의 첫 남자였다고.
그건 내가 너를 꿈꾸던 시절을 통째로 모아 녹여만든 나.의 결정체.
픽션이지만, 그래서 더 나를 녹여놓았던 그런 것들..
그거 알아?
그 땐 네가 작업해놓은 그녀의 사진이 뜬 화면을 그대로 부숴놓고 싶었어.
넌 약았고 비열했어 그리고 약하고 외로웠지.
근데 그런 주제에 또 남자다웠어.
결국 부서진 건 나였지만, 뭐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지.
다음 번에 만나게 되면 제발 부탁이니 그렇게 웃진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