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으로서의수학

쾌락주의자와 수학. 그리고 천재의 두 타입.

krumm 2013. 6. 15. 02:18


수학자.를 떠올리시면 어떤 분위기가 연상되시는지요?


하이델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에서 나오는 수학교수나 굿윌헌팅의 교수처럼 

 어딘가 엄격하고 딱딱하면서 동시에 소심하고 꽁한 구석이 있으나 

 새로운 해법에 목을 매는 그런 다소 비호감스러운 모습이 떠올리고 계신가요?


꼭 그런 어딘가 꽁하고 딱딱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성실하고 금욕적이며 말 수가 적은 사람이 으레 생각나기 마련입니다.

 일단 저부터도 수학자.라고 하면 그런 사람이 먼저 생각나니까요.

 

 그런데 막상 가장 유명한 수학자를 하나씩 떠올려보면

 그 모습에 들어맞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수학자 중 하나인 가우스.는

  무엇보다도 그가 성실한 꾸준함 끈기 있음과 잘 정리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귀족에게 연구비를 지원받으면서 

 자신의 연구기록을 다 공개하지 않고

 메모형식으로 끄적여 둔것을 아무렇게나 서랍에 처박아두곤 했다지요.

 그의 사후에 그렇게 아무렇게나 넣어진 메모들을 분석하고 해석하는데만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유클레이데스 (우리에겐 영어식 발음, 유클리드로 더 친숙한) 제 5공준에 대해

 가우스와 서신을 주고 받은 다른 수학자의 기록을 보면

다른 사람들을 아래로 보는 그의 자신만만함과 즉흥성 또는 끈기없음이 느껴집니다.


 또 다른 수학자인 오일러는 

 도박을 좋아해서 확률을 연구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가우스나 오일러의 업적이나 연구를 보면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와 딱히 어느 한분야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학이 세상을 해석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또는 도구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성향의 수학자들은 아마도 수학이 일종의 오감을 넘어서는 육감처럼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번뜩이는 순간순간 직감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감각을 통해 세상을 찢고 부수고 속살을 꺼내고 

 아무렇게나 이어붙이고 뭉쳤다가 다시 쪼개버리는

 그런 어린아이 장난 같은 유희를 즐기며 아이디어를 생성해냈겠죠..


  수학이라는 하나의 감각이 더 있는 그들에게는

 그러한 감각이 없는 다른 사람들이 우습게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알고 있다는 우월감.과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남에게 다 정리되어 보여줄 수 없는 한계같은 걸 느꼈는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그토록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번뜩이는 직감만 남은 파편만을 우리는 알고 있는건지도 모릅니다..


 순간적 쾌락을 선.으로 여기는 듯한 이러한 수학자들과 달리

 상당히 절제되고 정제된 형태를 추구하는 수학자도 있습니다.

 

 현대적 해석기하를 창시한 데카르트는

 좌표평면의 격자처럼

 그간의 논리와 수학을 격자처럼 짜 맞추어

 수학의 세계에 대통합을 이루어냈습니다.


 그의 연구를 보면 번뜩이는 직감을 끄적여뒀다기보다는

 벽돌을 쌓아다는 직공처럼 꾸준하게

 하지만 단 하나의 어긋남이나 나태함도 없이

 스스로를 정제하고 단련하여 쌓아올리는 꾸준함이 있습니다.

 그렇게 다소 금욕적인 고행의 끝에는

 '나는 존재한다!'와 같은 정신적인 희열의 대통합이 있습니다..

 그 희열은 또 다른 쾌락주의에서의 정신적 쾌락인 아타락시아와 분명 닮아있습니다.


 그의 전 논증기하와 대수로 완전히 분리되어있던 수학을 통합한 것은

 천재적인 번득임이 아니라 데카르트의 정제되고 정련된 성실함이었습니다.



 이 두 서로 다른 타입의 수학자들에게도 공통점은 있습니다.

 아마도 둘 모두에게 수학은 그들에게 있어 가장 지고한 지적이고 정신적인 유희였을 것입니다.

 아마 수학적인 세계를 읽고 창조하는 일보다 더 큰 희열을 주는 건 그들에게 많지 않았겠지요.


  수학은 금욕적인 것도, 딱딱한 것도 아닙니다.

 분명 가장 아름다운 학문으로서의 수학은 최고의 정신적 유희이자 쾌락입니다.